국제 결혼

국제 결혼

국제 결혼

체코슬로바키아인과 북한인 사이의 개인적 교류는 몇 건의 국제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중 하나는 체코슬로바키아인 의사, 카렐 체르니 박사와 북한의 수술실 간호사, 김경숙의 결혼이었다. 두 사람은 청진 병원에서 근무하다 만났고, 1956 년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혼인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체코슬로바키아로 떠났으며, 김경숙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북한이 이를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경숙(1934~2020)은 북한의 고성동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가족과 함께 항구 도시인 청진으로 이주하였다. 김경숙은 가난한 집안의 막내이자 신체적으로 가장 약한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교육과 자격을 취득하여 수술실 간호사가 되었다. (아버지는 농부였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김경숙의 가족은 아들 때문에 모든 재산을 잃고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남은 것은 어머니의 재봉틀뿐이었고, 이를 이용해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당시 김경숙은 재봉 기술을 배웠고, 이는 훗날 체코슬로바키아 프로덱스사에서 (운동화 주머니, 어린이용 턱받이 등) 직물·가죽 제품을 만드는 재봉사로 일할 때 요긴하게 쓰였다. 의료 기술은 북한을 떠난 후로 더 이상 활용하지 않았다.

카렐 체르니(1921~2001)는 카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여행을 갈망하던 그는 1950 년대 북한 청진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3 개월 만에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를 익혔으며, 위원회 면접을 보러 가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민요인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체르니 부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두 자녀를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미란(*1957 년)이었고, 딸의 이름은 타마라(*1965 년)였다. 김경숙은 카렐대학교에서 체코어 과정을 수강하며 언어를 익혔다. 하지만 자녀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는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부부만의 ‘비밀 언어’가 되었다.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가족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1966 년부터 1971 년까지는 서아프리카 가나에서 거주하였으며, 그곳에서 카렐 체르니는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유아식 공급을 위해 날개콩(프소포카르푸스 테트라고놀로부스) 가루를 활용하는 연구에 참여하였다. 체르니 가족은 세 차례의 근무 기간을 통해 총 4 년 반 이상을 가나에서 보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근무를 마친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었으며, 그 기간 유럽의 여러 대도시를 방문하고 대서양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장남 미란은 가나에서 외국인과 부유한 가나인 자녀를 위한 국제 학교에 다녔으며, 딸 타마라는 프라하에 돌아온 후에야 초등학교 1 학년에 입학하였다. 카렐 체르니의 마지막 해외 출장은 1980 년대 중반에 방문한 리비아였다. 그는 1968 년 정치 상황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가나에서 귀국한 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서 제명되었으며, 그 후 그가 자본주의 국가로 여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간주되었다.

한국과의 연락

체르니 가족은 가나 체류 기간뿐만 아니라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또 다른 체코슬로바키아인과 북한인 부부인 바잘 부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체르니 부부는 1980 년대부터 집의 방 한 칸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임대하였다. 이를 통해 김경숙은 남한 또는 일본 출신의 한국인 관광객들을 알게 되어 그들과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국경일이나 김일성 생일과 같은 주요 기념일에는 딸과 함께 프라하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하며, 언젠가 북한에 가서 가족과 재회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북한에 친척이 있다는 유일하고도 구체적인 증거는 이따금 전해지는 편지와 다양한 내용물이 담긴 소포뿐이었다. 체르니 가족은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산 말린 생선을 매우 좋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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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photograph of MUDr. Karel Černý, CSc.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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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photograph in the living room. PHOTO: Collection of the Černý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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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ŏngsuk’s youth in North Korea. PHOTO: Collection of the Černý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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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photograph of Kim Kyŏngsuk. PHOTO: Collection of the Černý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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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ren Miran and Tamara in Ghana. PHOTO: Collection of the Černý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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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ce Arch in Accra, the capital of Ghana. PHOTO: Collection of the Černý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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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ses in Ch’ŏngjin Hospital.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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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ŏngsuk behind the wheel.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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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ŏngsuk was a skilled seamstress.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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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holiday in the Krkonoše Mountains.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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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ch with friends in Ghana.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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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ŏngsuk with a friend from North Korea.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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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holiday in New York.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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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yŏngsuk with her son – camping and drying chili peppers.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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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friends in front of their house in Ghana.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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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t tour. PHOTO: Collection of the family Čern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