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는 1948 년 2 월 공산당 쿠데타 이후 동구권에 속하게 되었으며, 정책은 소련에 의존하였다. 이는 명확히 표명한 한국전쟁(1950~1953)에 대한 입장뿐만 아니라, 이후 1989 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치중했던 일방적 외교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 측과 여러 표준 계약을 체결하였다. 일부는 상호 계약이었으나 대부분은 병원 설립 및 지원, 경공업 건설, 기계 장비 공급, 노하우 제공, 체코슬로바키아 전문가 파견 등 이른바 ‘형제적 원조’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군사 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중립국감독위원회와 중립국송환위원회 소속 국가로 정전협정 이행을 위한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북한 영토 내 56 군병원에 통합된 이동외과 야전병원에서 활동하였으며, 체코슬로바키아 측 비용으로 청진에 병원을 건립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북한에 상당한 물자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 “한국에서 손 떼라”, 스톡홀름 호소, 평화 수호자 협정으로 잘 알려진 청원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수용하여 그들에게 장기적으로 교육을 제공하였으며 문화 영역, 특히 한국 영화 산업을 창설하고 물적 장비를 지원하는 일에도 기여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문화계도 여러 영화, 출판물, 예술 작품을 통해 전쟁에 반응하였다.
전쟁의 격동기가 지난 후 체코슬로바키아와 북한의 양국 관계는 1956 년 김일성을 포함한 정치 인물들의 방문을 시작으로 무용·음악 공연단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고착된 틀 안에서 지속되었다. 가장 중요한 공연으로는 1956 년 세계적인 무용수 최승희의 공연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방문은 유럽 순방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북한 대표단은 해당 기간 동유럽 친선 국가들을 연이어 방문하였다. 그 우호적인 관계의 결과, 몇몇 국제 결혼도 성사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교류 강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다 1960 년대 이후에는 그 관계가 상당히 약화하였다. 북한은 1970 년대 이후 제 3 세계를 중심으로 지도자의 야심을 품었다. 그리고 1980 년대에는 경제 위기에 봉착하였으며, 1989 년 이후에는 활발했던 교류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현재까지도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